그랬다고한다

퇴사썰 (패션디자이너가 X같은 이유)

시무룩한 파란콩 2021. 1. 3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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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중반, 패션디자이너로 모든 수명을 갈아내며 밤낮없이 일을 할 때, 몸이 정말 많이 상했었다. 기본이 막차퇴근이었고, 밤을 새는 일도 허다했다. (일주일에 3일은 밤을 샜다) 주말이란 없었고, 토요일도 일요일도 출근했다. 물론 야근수당 추가근무수당 휴일근무수당 꿈도 꿔본적없었다. 오히려 그런걸 기대하는 것 자체를 염치없게 보는 분위기. 연차월차? 당연히 없다. 그냥 평범하게 일요일에 잠이나 실컷 자봤으면,, 하고 바랬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집단인지라, 사람스트레스는 뭐..말할 필요도없이 엄청났다. 디자인실은 (기센여자들만 모여있는)여초였던지라 다른 팀보다도 더 엄청났다고 자부할 수 있다. 생명력을 깎아먹는 직장생활에 이유없이 피부에 진물이 났고, 폐렴이 아닌데도 매일 사레가 들린 것처럼 기침을 해댔다. 스스로의 소화능력으로는 음식을 소화할 수도 없었고, 소화제와 위장연동제를 습관처럼 먹고 살았다. 술담배는 일절하지도 않는데 마치 매일이 숙취인듯 울렁거리고 피곤했다. 병원을 하도 들락날락해서 의사는 이미 나를 보면 안타까워하면서 수액을 준비시켜주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그 직종을 떠난 것은 정말로 몸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2년에 한번 국가에서 무료로 건강검진을 받게끔 해준다. (위험 직종은 매년 받아야함) 그 때 나는 몇달째 생리도 안하고, 배는 너무 아프고, 걱정이 되어 조금 큰 산부인과에 검진을 받을 계획이 있었다. (남자친구도 없고 당연히 결혼도 안했는데 말이다.) 마침 예약해 둔 산부인과가 국가건강검진을 시행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정밀검진까지 받게되었다. 임신 한번 한적없는 내가, 자궁속에 혹이 있다고 했다. 신경성, 스트레스로인해 면역력이 떨어진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위험한 혹인지는 조직검사를 해봐야 하므로, 샘플을 채취하여 검사기관으로 따로 보냈는데 너무 겁먹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5일간 어떻게 보냈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결과는 썩 좋지않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거하나때문에 내가 죽지는 않겠지만ㅎㅎ) 더 커지기전에 수술해야한다고 했다. 이 사실을 상사에게 통보했을 때, (수술일정을 위해 무급이라도 좋으니 하루이틀 휴가를 받을 생각이었다.) 그녀의 반응이 너무나 악마같았기때문에 서둘러 그 직장을 도망치듯 나왔다. 화를 내거나 욕을 한건아니었지만, 그녀는 어이가없다는 듯 비웃으며 여기서 너만 고생하냐고, 야 그럼 난 진즉에 스트레스로 죽었어ㅎㅎ 라고 말하는 그 태도와 표정이. 아. 정말 여긴 소시오패스들 소굴이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껴버렸다. 그렇게 몇일 내로 사직서를 써서 제출했을 때, 마치 싸이코처럼 돌변해서 우리가 너없이 어떻게 사냐, 너가 우리 디자인실 주축인거 알지? 내가 너 얼마나 의지하고 믿는데, 이렇게 가버리냐 다시생각해봐라, 뭐가 문제냐, 어떻게 너가 나한테 갑자기 이럴수있냐 등등등을 늘어놓는 행동이 소름이 끼칠정도였다. 내가 단호하게 '몸이 못버텨서 안되겠다. 죄송하지만 당장 내일부터 수술들어간다고 못 나온다'고 했을 때. 그래.그럼 알겠어. 하며 돌변하던 그 악마같은 표정. (+결국 퇴사 후 마지막 달 월급과 퇴직금이 반년넘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대로 떼어먹으려던 생각이었겠지. 이미 사직서는 수리되어있었고, 사장님 사인까지 결재를 모두 탔는데도 일부러 주지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노동청에 신고넣어 체납분까지 전부 받아내었다.) 

 

 

여튼. 회사욕은 이쯤하고, 의외로 수술은 빨리 끝났다. 나름 그것도 수술이라고, 이후 먹는 것, 자는 것 오로지 내 몸조리하는 데에만 집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이었다. 내가 오로지 내 건강을 챙겨본 것은.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면서, 젊은 것을 너무 맹신했던 것 같다. 몸에 근육도 하나 없으면서 오직 깡하나만 믿고, 발로 뛰어다니던 시절. 동대문 시장에 나가 내 몸보다도 무거운 원단가방을 이고 다니면서도 점심대신 아이스아메리카노로 기운을 차렸던 일. 내 밥보다도 거래처일이 더 중요했던 것. 모두 다 내 젊음을 너무 맹신했던 탓이다. 회사욕은 실컷 해놨지만, 결국 돌아보니 내가 그렇게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고 마치 노예처럼 굶어가며 일했던 것은 다 내가 내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탓이다. 내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했더라면, 그깟회사 진즉해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패션기업이 모두 다~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좋은 회사들도 많고, 요즘 시대가 시대인지라 서로서로 인식도 많이 바뀌어가는 추세이다. 하지만, 고여서 썩은 물은 이미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정시출근하고 정시퇴근하고. 아직 한참 멀었다. 디자이너 브랜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마지막에 있던 그 회사가 대기업은 아니지만, 나름 이름들으면 알만한, 그리고 설립된지 오래된, 규모가 좀 큰 중견기업이었다. 이전에 다녔던 디자이너 브랜드에 비하면, 훨씬 회사같은 체계도 있고 대우는 훨씬 나은 편이었다. 그래도 '이정도'였다.

 

 

수술후에 처음으로 인생에 쉬어가는 시기를 맞았다. 대학생때도 휴학 한번 한적 없었고, 방학 때는 자격증 따느라 바빴다. 졸업전에 이미 취직이 되어 바로 사회인이 되었고, 이직을 할 때에도 휴식기 없이 바로 다음 회사 업무에 투입되었다. 그 다음 회사도, 그 다음 회사도. 요즘같은 취업난에, 꾸준하게 러브콜을 받았다는건 참 감사한 일이지만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 적어도, 최소한, 휴일은 쉬는 회사를 다녔어야했다. 돈도 벌면서 정말 열심히 모았는데, 정말 버는 족족 병원비로 다 나갔다. 

 

 

생각보다 건강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나빠지기까지는 정말 순식간인데, 다시 정상인의 몸으로 돌아오기까지는 곱절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 빌어먹을 업종을 떠나온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내 몸은 이유없이 아프다. 피부에서는 진물이 나서 일년이 넘도록 스테로이드 연고와 약을 먹고, 기관지염 때문에 또 약을 먹는다. 위경련이 자꾸 일어나서 두달에 한번은 내과에 가서 수액을 맞고, 역류성 식도염에 고생한다. 나는 휴일에도 아침일찍일어나 균형있는 아침밥을 챙겨먹고, 점심/저녁도 결코 대충 먹지않는다. 먹는 양 자체는 적지만, 영양소 비율을 꼼꼼하게 따져서 먹는다. 라면 같은 인스턴트는 손절한지 오래되었고, 땀 흘리는 운동은 이틀에 한번, 매일아침 자세교정 스트레칭을 꼭 해준다. 영양제는 꼭 필요한 것만, 비타민,오메가3,철분,유산균. 아직 위장이 약해 빈속에 먹을 수 없다. 이런 생활을 거의 2년째 하고있는데도 몸이 영 좋지않다. 다시 건강해지려면, 나빠진기간의 곱절이 걸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계속해서 쉬기에는 나도 생활비가 딸려서, 쉬는동안 독학해서 프론트엔드 디자이너로 취직을 했다. 사실 패션디자이너로 있을 때와 쓰는 툴이 비슷했기 때문에 html말고는 별로 공부할건 없었다. 지금 회사는 규모도 작고, 이전의 월급보다는 반도 안되지만, (이쪽으로는 신입경력이 되기때문에) 정말 좋은 대우. 사람대우 받으면서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친근하면서도 서로 지켜야할 선은 절대로 넘지않는다. 사장님도 월급 절대 늦게 주신적도 없고, 항상 적게준다고 미안해하신다. 생일이 되었을 때도, 명절이 되었을 때도, 자꾸 카톡으로 따로 용돈과 케이크, 한우세트를 챙겨주신다. 그리고 정시출근하고, 퇴근하기 10분전에 미리 다들 퇴근하자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단 1분도 초과근무 시키지 않으신다. (1분이라도 더 일하고 있으면 화내심) 어쩌다 한번 사장님이 외근으로 퇴근시간에 없으시면, 6시 땡 하면 다 퇴근하는지 확인하신다. 지금 당장 컴퓨터에서 손떼고 다 일어나라고ㅋㅋㅋㅋㅋ

(+이전 회사는 떡값같은건 없었다. 아니, 추석당일 빼고 전날 뒷날 전부 출근했다. 1월1일에도, 삼일절에도. 설날에도 출근했다. 휴일근무수당? 없다 그런거. 그때도 화나는 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염치없는 코노칙쇼야로들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은 4가지되겠다.

1. 패션디자이너 정말 비추한다. (정말 괜찮은 대우해주는 좋은 회사들은 해도 됨)

2. 개처럼 일하면 정말 개새낀줄 안다. 솔선수범 노예처럼 일한다고 그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3. 제발 건강할때 감사한줄 알고, 미리미리 건강 챙겨라. 특별난 영양제 보다도, 밥 잘먹고 잠 잘자는게 보약이다.

4. 버티는게 이긴다는건 다 옛말이다. 시대는 변했다. 아닌건 빠르게 잘라내고, 새길 찾아라.

여기 나간다고 굶어죽지 않는다. 내 능력과 자신감만 있으면 어디든 돈벌궁리는 있다. 

 

 

사회 초년생들도, 경력직들도, 취준생들도, 퇴사하고 쉬는 사람들도, 남의 돈 벌기가 물론 쉬운일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큰 자산는 내 자신이고, 내 자신이 무너지지않는 한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빈말이 아니다. 원하기만하면 된다. 무슨 상황이든 너무 작아지지말자. 세상은 크고 내 존재는 먼지 티끌만한건 맞지만, 다른 사람들도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다 먼지티끌이다. 높은 사람처럼 으스대는 사람도, 대가리 오함마로 맞으면 죽는건 똑같다. 그러니까, 안되면 되는거 해보자는 생각으로 부담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내 자신의 몸건강 마음건강 잘 지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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